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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진] 주마등 열차

by 젹이요 2022. 1. 26.

2022. 01. 22

KPC. 강진철

PC. 편려하

 

 

 

 

 

▼시나리오 원주소

 


 

 

 

 

이하 시나리오 스포일러

(상황에 따라 스토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일부 개변한 부분이 있습니다.)

 

 

 

 

 


 

 

 
" 우린 결국 다시 만날 거야. "
 
<주마등 열차>
 
2022.01.26
 
KPC. 강진철
 
PC. 편려하​
 
img
 
덜컹… 덜컹…
 
열차가 선로를 지나가는 소리와 진동이 려하의 귀를 간질입니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장소입니다.
 
맞은편 좌석에는 진철이가 창가에 시선을 둔 채 앉아있습니다.
 
려하는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만을 기억합니다.
 
그때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끔찍했을까요?
 
아니면 홀가분했을까요?
 
아니면,
 
어차피 사람은 다 죽으니까,
 
별다른 감정은 느끼지 못 했을까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외롭지 않았던 건 확실합니다.
 
원했든, 원치않았든.
 
혼자만의 죽음은 아니었으니까요.
 
… …
 
려하는 맞은편에 앉은 죽음의 동반자를 눈에 담아봅니다.
 
계속 바라보면,
 
진철이도 려하에게로 고개를 돌립니다.
 
강진철:이제 일어났냐?
 
편려하:내가 오래 잠들었었나?
 
강진철:그래. 더 둔해진 것 같은데.
 
편려하:얼마나 지났지.... (두리번) 여기는 어디야?
 
강진철:여기는 열차 안이야.
사후세계로 가는 열차래.
'나는' 죽었거든. 열차의 종착역은 죽음이겠지.
 
진철이는 의연하게 툭 내뱉습니다.
 
편려하:사후세계... 되게 실감이 안 나네.
 
강진철:그래? 어차피 넌 다시 돌아가게 될 테니까 실감할 필요 없어.
 
편려하:(...?) 나는 다시 돌아간다고? 어디를?
 
강진철:어디긴, 다시 이승이지.
넌 죽지 않았어. 나만 죽었지.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건 잘못된 기억이야.
 
편려하:나는 안 죽고 너만 죽었다고?
그럼... 너는 왜 죽었는데? 나는... 여기 왜 있는 거고?
 
강진철:...(머뭇거리다가) 자, 자세히는 기억 안 나. 그냥 죽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야.
네가 열차에 탄 건... 내가 널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 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야.
넌 이따 멈추는 역에서 내리면 돼.
 
편려하:... 초딩아, 마지막 소원을 나로 쓰면 어떡하냐? 더 중요한 걸 말해야지.
(머리가 복잡하네....) ... 안 내리면?
 
강진철:...어떻게 쓰든 내 마음 아니야?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지 눈썹을 구겼다)
사후세계로 가는 열차라니까? 넌 안 죽었는데 안 내리면 안 되지.
 
편려하:물론 네 마음은 맞지만. (왜지? 답지않네.) 그래도 누가 날 끌고 내리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럼 난... 계속 타고 있을 수도 있겠네?
 
강진철:...하, 아니... (앞머리를 흐트러뜨리며 넥타이를 조금 잡아당겼다) 모르겠다, 일단 천천히 이야기 하자.
 
진철이와 이야기를 마칠 즈음,
 
열차의 내부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은,
 
진철이와 려하가 마주보는 좌석 중앙에 놓여있습니다.
 
열차의 창은 넓고 깨끗하여 창밖을 구경하기에 적당합니다.
 
은은한 음악이 열차 내부에서 울립니다.
 
조사포인트: [ 테이블, 창문, 강진철 ]
 
편려하:(테이블 먼저 둘러봅니다)
 
깔끔하고 작은 테이블입니다.
 
꽃병 하나와 디퓨저가 놓여 있습니다.
 
꽃병에는 흰 국화가,
 
디퓨저에서는 매캐한 향이 느껴집니다.
 
[지능] 판정
 
편려하:
지능
기준치: 80/40/16
굴림: 7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흰 국화와 향초의 향이라니,
 
꼭 장례식장을 연상되게 하는 조합입니다.
 
국화는 생기발랄하게 흰 색을 뽐내고 있습니다.
 
편려하:(흰색이 생기발랄...)
 
더 특별한 건 없습니다.
 
편려하:(창문을 둘러봅니다)
 
넓은 창문입니다.
 
열차 바깥으로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막 동이 터오고 있습니다.
 
산 끝에 걸쳐져 있는 해가 눈부시게 자신의 존재를 빛내고 있습니다.
 
하늘은 반쯤 노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관찰력] 판정
 
편려하: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창틀에 끼워져 있는 편지봉투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은은하게 바다 내음이 나는 것 같습니다.
 
편려하:(편지봉투 안에는 편지가...들어있나?)
 
열어볼까요?
 
편려하:(열어봅니다)
 
편지봉투를 열어보면,
 
안에는 짧은 메모카드가 들어있습니다.
 
카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img
 
편려하:...
(누가 쓴 거지?)
(아마도...)
 
강진철:... (뭐야? 하는 눈으로 쳐다 봄)
 
편려하:(...됐다, 편지 다시 편지봉투에 넣어요)
 
카드는 다시 편지봉투에 얌전히 들어갑니다.
 
편려하:(이제... 강진철을... 본다...?)
 
진철이를 보면...
 
별다를 것 없는 진철이입니다.
 
죽었다는 사실이 별로 와닿지 않습니다.
 
이렇게나 멀쩡하고, 목소리를 내고,
 
려하의 앞에 앉아 있으니까요.
 
만지고자 하면 만질 수가 있습니다.
 
뚜렷하게 눈에 보입니다.
 
[관찰력] 판정
 
편려하: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img
 
진철이의 눈가가 잔뜩 붉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이 비볐거나 많이 울었거나 했겠죠.
 
그러고보니 진철이의 옷차림은 정장입니다.
 
려하는 어떤가요?
 
평소와 같은 교복 차림이네요.
 
... ...
 
편려하:(답지않은 옷차림이군...)
 
열차를 둘러보고 있으면...
 
창 밖으로 이른아침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고요하고 가라앉은 공기와 함께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자고있을 시간이겠네요.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으면,
 
진철이가 려하에게 말을 건넵니다.
 
강진철:개 뜬금없긴한데...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네가 옥상에서 땡땡이 치고 있었을 때.
 
편려하:당연히 기억하지. 누가 처음부터 그냥 이름을 부르길래.
 
강진철:(픽 웃는다) 그런 걸로 기억하는 거야?
 
편려하:아직도 선배대접 안 해 주는 건 너 뿐이라.
 
강진철:흥, 선배는 무슨. 겨우 한 살 차이인데. 똑같은 거 아님?
난... 너 처음 만났을 때, 옥상에 처음 와 봤던 거라...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네.
 
편려하:한 살 차이가 나중에는 엄청 크다?
그때 옥상에 처음 와봤다고? 그럼... 내가 동아리만 잘 나갔어도 넌 옥상에 올 일이 없었으려나.
 
강진철:옥상이 있는 줄은 알았는데... 학생이 올라갈 수 있는 지는 몰랐지. (곰곰...) 그랬으려나? 아무래도? ...누가 옥상 가보라고 할 것 같진 않네.
허, 한 살 차이가 어떻게 큰데? 그냥 1년 느린 것 뿐이잖아~
 
편려하:옥상은 원래 남이 시켜서 오는 곳이 아니야. 자신의 의지로 오는 애들이 대부분이지. 오히려 옥상에 온 애들은 굳이 애들보고 옥상에 가라고 안 할걸. 혼자있어서 더 좋은 곳이 옥상이거든.
29이랑 30 되게 달라보이잖아. 뭐 그런 거?
 
강진철:...그래? (눈 꿈뻑) 그럼 넌 혼자 있는 게 더 좋았겠네. 욕심쟁이 아니야, 완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팔랑귀) 아니 그래도, 1년만 기다리면 금방 따라 잡는 나이잖음~ 그런 걸로 어린 취급 하는 거야?
 
편려하:나도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음.... 네가 오고난 뒤 딱히 싫다는 생각은 안 들었으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그냥 대부분 그렇다는 거지. 내가 일학년 때는 늘 옥상에 혼자였으니까.
그렇다니까. 일년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나이게? 그 일년에 애달복걸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강진철:(히죽 웃으며) 그렇지? 내가 있는 곳인데 어떻게 싫을 수가 있겠어. 그 마음 다 알지. (끄덕끄덕)
어땠어, 혼자였을 때보다 나랑 있는 시간이 더 즐거웠어? 둘 다라는 선택지는 없음!
(이어지는 대답에 그림자가 얼굴에 옅게 졌다) 어...하긴, 힘들고 나쁜 일만 일어나는 1년이라면... 느리게 흘러가긴 하겠다. 짧게 느껴지는 건 인생에 거스름이 없고 평온할 때 뿐이겠지. (머쓱한듯 제 뒷목을 만진다)
...알았어, 인정~ 그렇다고 널 선배취급 해준다는 건 아니지만.
 
편려하:(초딩...) 글쎄, 둘다라는 선택지가 없다는 건 무시하고 그냥 둘다라고 할게. 정말 그 나름대로 둘다 좋았거든. 각각 장단점이 있는 거지, 뭐.
(끄덕끄덕) 그리고 그 일년을 더 치열하게 살고 싶어서 원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고. 그러니까, 이 말들은 인정하는데 나를 선배취급 하지 않는 건 왜지? 다른 놈들한테는 잘도 부르는 것 같던데. (이번 생엔 글렀다는 걸 이미 알지만....)
 
강진철:허. (얼척!) 넌 늘 선택지를 벗어나네. 정해진 길을 가는 법이 없어. (궁시렁...) 뭐, 알았어.
넌... (힐끔) 그냥 싫어. 너한테 갑자기 선배라고 하면 완전 거리감 느껴지지 않겠냐?
 
편려하:나는 가장 최선의 선택지를 찾는 거니까. 네가 준 선택지에는 그게 없었고. 그러니까 너무 궁시렁대진 말고.
거리감까지야? 선배취급 말고, 그냥 연장자 우대라도 해주든가. 누나소리 한 번을 안 하지, 아주.
 
강진철:그래~ 알았다니까.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 나와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거 까먹지 않았지? (뚱...)
...나한테 누나 소리가 듣고 싶어?
 
편려하:안 잊었지. 그리고 아직도 별로 안 믿기고. 이게 사후세계로 가는 열차라니.... 이정도면 네가 거짓말한다고 해도 믿겠다.
네가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니까?
 
강진철:...난 마지막으로 널 불렀는데, 너도 나와 있을 때가 더 좋았다고, 나 듣기 좋은 말은 해줄 수 있잖아? (저 혼자 불퉁해져선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됐다, 됐어. 넌 거짓말 같은 거 안 하니까 내가 이해해줌.
그리고 이건 진짜 죽음행 열차라고~ (힐끔...) 내, 내가 목숨 가지고... 장난같은거 칠 것 같아? (묘하게 시선을 피합니다)
듣는 게 소원이야?
 
편려하:(이게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는 말이었구나) 알잖아, 나 그런 말 잘 못하는 거. 바랐다면 미안. 굳이 이해를 바라진 않을 테니 그냥 화내도 돼. (이봐, 죽기 전까지도 여전히 강진철인데 이게 죽음행 열차라고?)
(응... 너라면 충분히, 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굳이 내뱉진 않았다.) 뭐, 안 치겠지.
소원까지야.... 그냥 네가 죽었다니까 말해본 거지. 이게 정말이라면 넌 살아있을 때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은 말이니까.
 
강진철:그래, 알아~ 넌 여전히 똑같은 편려하네. 됐어, 별로... 화나는 일도 아니고. (제가 인상을 구겼다는 걸 이제야 알아챘는지 흠흠, 헛기침을 했다)
 
려하가 제 말을 믿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 티나게 안도합니다.
 
강진철:...그래? 그럼 마지막이니까... 한 번 정도는... (빤히 바라보다가)
...려하 누나?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본다)
아, 역시 이상하잖아.
 
편려하:그럼 다행이고. (역시 초딩.... 뭔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네, 보여.)
(와...)
내가 살다살다 얘한테 누나라는 소리를 들어보네. 역시 죽어야 가능했던 일이었나? 말 한 번 듣기 힘들다, 힘들어. (픽 웃고는)
 
강진철:...불렀으니까 됐지? (제가 불러놓고 어색했는지 귀끝이 발갛게 물들었다) 이제 안 할 거야.
...얘기가 왜 이렇게 됐냐. (얼척)
아무튼, 처음 옥상에 갔던 날. 나도 꽤... 재미있었어. 네가 편하기도 했고.
다시 그때로 가고 싶지만, 이젠 영원히 불가능하겠네.
 
열차는 덜컹 덜컹 소리를 내며 점차 앞으로 나아갑니다.
 
떠오르는 해도 어느덧 하늘을 맑게 빛내고 있습니다.
 
구름의 색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열차 앞으로 저 멀리 터널이 보입니다.
 
짧은 순간 열차는 터널로 진입하고,
 
려하의 정신은 점점 흐려집니다.
 
몸 또한 노곤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듣기] 판정
 
편려하: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무언가 커다랗고 웅장한 소리가 들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신이 점점 흐려지는 탓에 그것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귀에서 삐 -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 ...
 
정신을 차려보면,
 
려하는 어느 어두운 방 안에 떠 있습니다.
 
려하의 눈 앞으로,
 
카메라 필름같은 것이 촤르륵 펼쳐집니다.
 
그 중 하나의 장면이 클로즈업 되고,
 
별안간 시야에 려하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장소는 고등학교 옥상 같아 보입니다.
 
바닥에 앉아있던 려하가 당신을 바라보네요.
 
희미하게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이 장면은…
 
진철이와 려하가 처음 대화를 나눴던 때군요.
 
당신을 바라보며 그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려하는,
 
이따금씩 웃기도 하며 거슬림 없이 편안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주 한적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입니다.
 
이런 날도 있었죠.
 
장면의 시점은 오래도록 려하에게 머물다가 하늘을 향합니다.
 
저 멀리 한가롭게 날던 새가,
 
장면 위로 날아들어 그림자를 남깁니다.
 
... ...
 
그것을 지켜보다 보면 다시 정신이 점점 흐릿해집니다.
 
시야는 어둑해지고 뿌옇게 변해갑니다.
 
코끝으로 탄내가 미약하게 흘러들어옵니다.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옵니다.
 
열차의 창문을 통해 쨍한 햇빛이 뾰족하게 들어옵니다.
 
진철이는 려하의 맞은편 좌석에 앉아 멍하니 창문 밖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건강] 판정
 
편려하: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입 안이 어쩐지 짠 기분이 듭니다.
 
몸은 뻐근함이 풀리고 개운하네요. 말 그대로 상쾌한 느낌입니다.
 
려하가 몸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으면,
 
진철이가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굉장히 가라앉은 시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진철이의 좌석 밑에 무언가 삐져나와 있네요.
 
저게 뭘까요?
 
편려하:(뭐지? 살펴봅니다)
 
꺼내 봐야 뭔지 알 것 같네요.
 
편려하:(꺼내봅니다)
 
그것을 꺼내보면…
 
흰 삼베로 된 옷이 있습니다.
 
이건... 수의?
 
이런게 왜 열차 내부에 있을까요?
 
… …
 
열차는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창문 밖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바다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립니다.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파란 하늘에는 적란운이 떠있고,
 
그보다 진한 파란색 바다 위로 파도가 일렁이고 있습니다.
 
진철이가 입을 엽니다.
 
강진철: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야?
 
편려하:음... 처음 바다에 갔을 때? 바닷물에 발을 담궜을 때.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
 
강진철:진짜 좋았나 보네.
그럼 나랑 있을 때 제일 좋았던 적은? (장난스레 물어온다)
 
편려하:사실 기억할 순간이 많이 없어서 그때가 떠오른 걸지도.
너랑 아무말도 안 하고 그냥 떠가는 구름 바라볼 때. 그랬던 모든 순간이 좋았어.
 
강진철:그건 나랑 같구나. (간만에 진심으로 웃었다) 특별하게 뭘 한 것도 아니고, 정말 별 거 아닌 기억인데. 왜 이렇게 소중할까?
 
편려하:원래 별거 없는 걸 하는 게 제일 힘든 거거든. 인생에 있어서 큰 일들은 사건 하나하나로 기억나지만, 이런 잔잔한 기억들은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잖아. 근데 우리에게는 이 잔잔한 기억이 너무 좋았나보지. 어쩌면 그리웠을 순간들이니까.
 
강진철:너랑 나랑 취향이 겹치다니, 진짜 이상하다. (킥킥 웃는다)
내 인생은 늘 조용할 틈 없었는데... 네 옆에 있을 때만은 되게 고요해지는 것 같더라. 그게 싫지 않았어.
이제 이것도 잊히겠지만... 이 열차 안에 있을 동안은 계속 그 별 거 없던 잔잔한 날을 곱씹어볼게.
...네가 이 열차에서 내린다면, 너라도 그 소중한 기억을 계속 안고 살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내리지 않을 거야?
 
편려하:그러게. (네가 웃는 걸 보고는 따라 픽 웃고는) 누구에게나 조용한 시간은 필요한 법이니까. 근데 나는 네가 오면 늘 고요했던 인생에 돌 하나 던져진 기분이었는데. 뭐, 나도 마찬가지로 싫지는 않았으니까.
이 열차가 종착지에 다다르면 죽음이라고 했지.... 그럼 모든 기억이 없어지겠지?
음, 글쎄. 소중한 기억을 안고 살아봤자... 그게 몇십 년 남짓하겠지. 그걸 나 혼자 끌어안고 살아봤자 뭐해?
네가 날 부른 김에, 나도 그냥 네가 가는 길 심심치 않게 말동무나 해줄까.
 
강진철:... (마주 웃는 얼굴을 조용히 눈에 담다가 시선을 다른 곳에 둔다) 남에게 영향을 주는 건 꽤 뿌듯한 것 같아. 특히 목석 같았던 네 인생에 난입해서 흐트러지게 한 거.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 (다시 눈을 맞추고는 활짝 웃는다)
이제 나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거야. 너도 잊어버리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뇌 없는 잿더미가 되지 않을까?
(말동무라는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봅니다) 다른... 미련은 없는 거야? 진짜 편려하 황당하네...
(그런 점도 너 같지만. 짧게 생각합니다)
 
편려하:그 사람 인생에 한 파트는 장식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도 누군가에게 기억 된다는 건 좋은 거지만... (굳이 기억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뭘 그리 목석같았다고. 나 꽤나 활동적인 사람인데. (자기객관화가 덜 된 편...)
죽은 뒤가 정말 그냥 소멸이야?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이런 거라면 좀 실망인걸. 내가 기대했던 죽음은 좀 더 흥미로울 줄 알았는데.
미련? 세상에 남기고 올 미련따윈 정리해둔 지 오래인데. 언제든지 내가 있던 곳을 떠나도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도록. 늘 그렇게 살았어. (그래, 뭘 새삼스레.)
 
강진철:맞아, 좋은 거지. 그 사람에게서 내 흔적이 느껴지면 기분이 하이해진다니까. (당신의 생각을 역시 읽지 못하고 공감한다는 듯 끄덕) 태어나서 활동적인 사람을 한 번도 못 봤냐? ...아니, 바로 옆에 활동적인 사람 여기 있네! (자기 가리킴!) 이런 게 활동적인 거라고~
사실 나도 몰라~ 아직... 죽는 중이잖아? 저 끝에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본 적 없어. 뭘 상상하든 이제 돌이킬 수도 없으니까... 그냥 잿더미정도로만 생각하고 가는 거지.
기대하다가 큰 코 다친다. 저승이 이승보다 더 귀찮은 일이 많으면 어쩌려고 그래? (킬킬)
그래, 너 답다. 이제 아무 태클도 걸지 않을게. (심드렁...)
 
편려하:너는 누군가에게 기억될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어? 물론 나 말고. (근데 그러기에 우리 인생은 좀 짧았던 것 같다, 덧붙이고는) 왜, 활동적인 사람에도 다 여러 종류가 있는 거지. 나는 너처럼 시끄럽게 활동적인 게 아니라 그냥 차분히 활동적인 거야. 꼭 시끄러운 게 활동적인 건 아니라니까.
죽는 중이라... 그래, 나는 솔직히 이런 열차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 그래도 저승 꽤나 친절하네? 이렇게... 죽기 전 최소한의 시간도 주고 말이야. 나는 죽으면 바로 끝일 줄 알았는데.
그럼 너는 뭐가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가고 있는 그 끝에 말이야. (음) 나는 그냥 끝이 정말 끝이었으면 좋겠는데.
윽, 그건 좀 싫네. 그래도 새로운 쪽을 경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잖아. 물론 돌아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 말과 반대로 저승이 이승보다 더 좋을 수도 있는 거고? (네 마지막 말에 옅게 픽 웃고는)
 
강진철:나? 적어도 우리 학교 학생? 이 슈퍼스타를 모르면 간첩이지~ 난 자신 있어! 여기저기 쏘다니고... 적어도 1학년 중에서는 내가 제일 빠르고... 기억될 요소는 많잖아~?
근데 기억되는 것도 기억되는 건데, 난 사람들 인생에 지대하게 영향을 끼치는 게 더 좋아. 그게 더 멋있잖아? (맞는 말. 그러기엔 우리 인생은 좀 짧았지. 이제는 체념한듯 동의한다) 차분히 활동적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이야? (생전 처음 듣는 말인 양, 고개를 갸웃거린다) 얌전하면 얌전한 거고. 활동적인 거면 활동적인 거지. (이분법적 사고.)
그러게 무슨 절차같은 게 있나 봐. 덕분에 너를 이렇게 부를 수 있었지. 왜, 감옥도 사람들 면회오고 그러잖아~ 그런거지. (전혀 다른 예시를 끌고 오며 끄덕인다) 나는 끝에... 글쎄, (어떤 상상을 하는지 눈에 그늘이 지지만, 이내 눈으로 웃으며 그늘을 거뒀다) 나도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어. 자유롭고 싶으니까. 너 같이...
뭐... 네 말대로 좋은 곳이라면, 그것대로 나도 좋을 것 같아.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긴 한데.
 
편려하:그런 건 너무 방대한 거 아니야? 좀 세세하게, 아예 한 인물에게 기억될만한 사건들 있잖아. 물론 그 친구들도 너를 기억하긴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떠오르지는 않지 않을까. (그저 학창시절의 추억, 뭐 그쯤 아니려나.) 역시, 너는 너답네. 나는 굳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데. 누군가 나를 기억한다면... 그건 좀 의외겠지. (너도 알잖아, 내 인간관계는 다 얕았다는걸.) 음, 그러니까... 미지근한 거지.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아닌 그냥 적당히 미지근한 것. 그게 내 성격이었어. 그건 너무 일차원적인 사고다. 사람에게 보여지는 면이 얼마나 다양한데.
그럼 너도 누군가에게 말한 거야? 막 누가... 네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봤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네, 넌 대체 이 열차까지 어떻게 온 거야?) 감옥은 대게 끝이 있지만 이곳은 끝이 없잖아. 뭐...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기도 하나. (음...)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라.... 왜,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있을 수도 있잖아. 그런 건 싫어?
(하긴, 이렇게 생각한다고 그곳이 바뀌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도 이 찰나의 간격이 신기하네. 만약 내가 열차에서 내린다면, 그리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간다면. 이 기억은 사라져? 너와 마주보고 대화했던 지금 이 순간들 말이야.
 
강진철:그런 건... 모르지~?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건 기억해주는 사람 몫이니까... 난 내 자신을 알리는데 힘 썼으니까, 내가 할 일은 다 한 거 아닌가? (별로 깊은 생각은 안 해봤는지 히죽 웃는다) 사실 깊은 주제로 대화하거나 진지하게 얘기해 본 기억이 별로 없긴 한데, 어느 기가막힌 타이밍에 그 머리 파란 녀석이 띠용~ 하고 생각날 수도 있는 거고~ (끄덕끄덕!)
네 녀석이 그렇지 뭐.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겠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걸. 널 끝까지 기억해 줄 사람들.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거야. 영원히 기억해줄 사람이 없는 건 말이 안 돼. 네가 싫어해도 어쩔 수 없을걸~?
아니. 아무리 그래도~ 활동적...이라기엔... 뭐 그렇다 쳐. 네 인생이 그렇게 미지근했다니까, 바다에 뛰어든 게 얼마나 자극적인 일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절레 고개를 흔든다)
...(뒤이어 오는 말에 제대로 대꾸를 못하며 웅얼거리다가) 음... 자세한 건 역에 도착하면 알려줄게.
물론... 행복하면 좋을 거야. 근데 나도 좀... 지친 것 같아. ...내 입에서 이런 말 나오는 거 좀 웃기지 않냐. (부은 눈가를 잠깐 손등으로 문지릅니다) 기억... 나도 모르겠어. 그런 건...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근데,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응. 기억되는 게 역시 더 좋다. ...어차피 안 내릴 거라며?
 
편려하:모르는구나. (저도 누군가에게 기억을 남길만한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고 장담... 하는 바라, 그냥 네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긴, 별 의미없이 한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순간일 수도 있으니까. 정말 네 말대로 기억해 주는 사람 몫이네. (픽 웃고는) 그러게, 그 파란머리 보드타던 놈은 어쩐지 이상한 순간에 어이없게 생각나서 그냥 웃어버릴 것 같아.
그런가? 그건 생각 안 해봤네. 굳이 나를 기억할 필요는 없을 텐데. 자기들 인생에서 내가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그걸로 끝. 그냥 다들 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영원은 약속하지 않는 게 좋을걸. 영원한 건 없을 테니까. 지금 내가 하는 생각도, 모든 말도.
그랬나, 돌이켜보면 그런 것 같기도.... 확실히 바다에 몸을 담궜던 건 정말 재미있었거든. 그때는 그곳에 들어가면 죽을 수 있다라는 개념조차 잘 몰랐어. 네 말마따나 익스트림 스포츠라도 했어야 했나봐. 그럼 좀 더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으려나.
(조금 놀랐나? 네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의외... 뭔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웃길 게 어디있어. 사람이라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할 텐데. 넌 좀 쉬어도 돼. (역시 불친절하네. 아마도... 기억은 사라질 것 같지만.)
(끄덕) (굳이 전의 생각을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정말 굳이라고 느꼈으니까.) 응, 그냥 궁금했어. 그리고 나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며. 그럼 내가 이 열차를 계속 타고 있다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고.
 
강진철:그치그치, 그렇다니까~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딱! 기억해내는 거지. 내가 공들여 탈색까지 하고 시퍼렇게 염색한 보람이 있다니까~! 물론,... 그 기억하는 순간까지 내가 옆에서 지켜본다면 더 즐거웠겠지만~ 그건 아쉽네.
기억할 필요가 없다니... 기억은 의지가 아니잖아? 그 사람들도 필요해서 기억을 간직하는 게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일 거야. 어쩌면 지우고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고~
아니, 생각해보면 사람이 죽으면 장례도 치르고... 절차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잊는 게 더 이상하겠다. 그러니 너야말로 함부로 끝이라고 얘기하지마~
내가 만약...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었다면, 그러는 너를 끝까지 붙들고 붙들어서 성불 못하게 잡고 있었겠다. 네 말이 틀렸다는 걸 보여줘야지. (씩 웃는다)
그런 취미가 있었다면, 나도 네가 활동적이었다는 걸 인정했을텐데! 하하! 네가 그런 인생을 살았다면 우리는 다르게 가까워졌을 거야. 그것도 재미있었겠네.
그래? 네가 쉬라고 하니까, 음... (말을 고르는 듯 눈동자를 굴리며) 너를 만나고 싶다고 한 게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고마워. 정말로 난... 좀 쉬고 싶어.
내리지 않는다면 너도... 나랑 같은 꼴이 되겠지...? 아마도. (정말로 모르는 표정) 다른 사람들이라면 다시 자기 삶을 살러 나간다고 할텐데... 똑같은 말 할 것 같으니까 그냥 말을 줄일게.
 
편려하:하긴, 너를 기억해 내는 건 네 파란 머리도 한 몫 한 것 같다. 이제는 네가 파란머리가 아니면 조금 심심할 지경이라니까. (맞다, 자꾸 망각하게 되네. 너와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그냥 우리는 그저 추억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정말 평범하게, 그저 기차여행을 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따지면 기억이란 건 꽤나 소중할 수도, 정말 지우고 싶을 수도 있겠네.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더 애걸복걸 할지도 모르겠고. 막상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잘 안 떠오르고 쓸데없는 것만 떠오르면 어떡해? 그건 진짜 싫겠다.
나는 사실 장례라는 거, 너무 어둡다고 생각해. 죽음은... 마냥 어두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뭘 그리 거창하게 엉엉 울며 슬퍼하는지. 그럼 떠난 사람은 더 슬프지 않겠어? 물론...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 더 클 테지만. 나는 내가 죽는다면, 그리고 만약에 나를 위해 울어 줄 사람들이 꽤나 있다면, 울지 말고 웃어달라고 말하고 싶네. (뭐, 그건 오케이. 단정지을 수 있는 건 없지.)
윽, 그거 하나 보여 주겠다고 나를 붙잡고 있을 거라고? 그거 완전 배려심 넘치는 행동이네. 나는 그럼 그 긴 세월을 그저 혼자 떠돌라고. (웃네.... 그러면 그냥 미련만 길어질 뿐일 텐데.)
뭐, 다시 돌아간다면 시작해 볼지도 모르지. 나 은근 운동신경 있는 것 같거든. 하다보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고? 물론 그거하다 죽는 사람도 많대. (반농담식으로 툭 던지고는.)
(무슨 일이 있었나? 뭔가... 내색하던 애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네 가는 길 좀 편하게 만들어 줬다면 다행이네. 난 또 너무 잔...소리 같은 말만 했나, 조금 걱정하기도 했어. 네 마지막 선택에 후회가 없는 것도 다행이고.
내가 언제 다른 사람들 따라간 거 봤어? 다른 사람들이 본인들의 삶을 살러 간다고 말하는 것같이 나도 그냥 내 삶을 살러 가는 것 뿐이야. 종착지가 다른 거지, 똑같아. (끄덕끄덕)
 
강진철:그렇지~? 완벽한 선택이었지 이 색깔. (히히, 웃었다. 정말로 무슨 소풍을 가는 것 마냥, 마지막이라는 씁쓸함이 느껴지지 않는 밝은 분위기로.) 유감이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 기억상실증 걸리지 않는 이상 거머리처럼 붙이고 다녀야하는 거 아님~? 싫으면 싫은대로 살아야지 별 수 있나.
...너의 장례식엔 아무도 웃지 않을 것 같은데. (한숨 같은 웃음을 픽 소리를 내며 흘린다.)
응, 너도 나 안 잊어버리게 계속 붙잡고 있으려고. 그러니까 쉽게 떠나버리지마. (당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싱글벙글 웃는다)
어휴, 말을 해도 꼭. (그러시겠죠. 하는 표정)
...별로, 잔소리 같지 않았어. 네가 눈 뜬 이후로 다양한 감정이 오가서... 그냥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좋네, 나는.
그래, 이 강진철님이 후회는 무슨~ 내 선택은 언제나 옳았어. (헤헤, 웃으며 코 밑을 쓴다)
네 말대로... 정답은 없지. 네가 좋을 대로 해. 그냥 나랑 이렇게 앉아서 주구장창 이야기만 하자고.
나쁘지 않은 마지막이네.
 
편려하:응, 네가 다른 머리색을 하는 건 꽤나 상상이 안 가네. 조금 안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평소와 같은 네 모습에 저도 옅게 웃었다. 이제야 강진철같네.) 하긴,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널리고 널렸으니까. 원해도 안 된다면 그냥 더이상 안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 덧붙이고는)
왜, 그래도 내가 유언같은 거 내 목소리로 직접 녹음해 놓으면 울다가 웃지 않을까. 거기서 좀 시답잖은 농담도 하고 말이야. 이를 테면... 아재개그 같은 거? 그럼 어이없어서라도 좀 웃겠지.
지금 이미 떠난 사람이 할말이야 그게? 본인은 못 지킨 걸 나보고 지키라니.... 그거 참 이기적인 답변이네. (너는 지금 이 열차의 끝이 어딘지 알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가 잘도 나오네.)
그럼 다행이네. 그래도 네가 마지막에 느끼는 감정은 좋은 쪽이니 말이야. 응, 네가 후회하는 건 별로 없지. 마지막까지 옳은 선택을 했길 바랄게. (근데, 정말 이게 마지막은 맞고?) 그래, 뭐. 이렇게 맘놓고 이야기하며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이 언제 또 오겠어.
 
려하가 이야기를 마치면,
 
돌아오는 건 진철이의 잔잔한 미소입니다.
 
강진철:그러네. 이젠 어느 쪽도 지킬 수 없네.
...그냥 해 본 말이야.
 
바다 위로 갈매기들이 줄지어 날고 있습니다.
 
바다는 많은 것을 포용하고 있는 포근한 색입니다.
 
한참 열차 창문 밖 바다를 응시하고 있으면 또다시 저 멀리 터널이 보입니다.
 
열차는 터널로 천천히 진입합니다.
 
[건강] 판정
 
편려하: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어디선가 약하게 낯선 냄새가 풍기지만…
 
무슨 냄새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어두운 방입니다.
 
필름같은 것이 려하의 눈 앞에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필름은 한참 이어지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크게 확대됩니다.
 
밝아지는 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면,
 
 
눈 앞에 려하가 있습니다.
 
려하는 별 다른 고민없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옆으로 얼굴을 대어옵니다.
 
쪽, 소리와 동시에,
 
당황한듯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고,
 
금세 장면 속의 려하와 멀어집니다.
 
아, 생각 났습니다.
 
이것도 언젠가의 진철이와 함께했던 기억이네요.
 
장면 속 려하는 재밌다는 듯이 살풋 웃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가와서 당신을 보고 사과합니다.
 
'이게 뭐 별거라고 그렇게 빨개지냐.'
 
두근두근.
 
누군가의 빨라진 심장 소리가 울립니다.
 
...
 
그리고,
 
려하의 정신은 다시금 꺼져갑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흔들립니다.
 
버틸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옵니다.
 
 
덜컹, 덜컹.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옵니다.
 
동시에 창 밖의 서녘노을이 열차 내부에 내려앉습니다.
 
분홍색으로 번져가는 풍경을 보다보면 마찬가지로,
 
가만히 서녘에 물들어있는 진철이가 보입니다.
 
새파랬던 머리색이 강한 빛에 물들어 탁해집니다.
 
[심리학] 판정
 
편려하: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진철이는 어딘가 우울해보입니다.
 
[관찰력] 판정
 
편려하: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려하의 주변으로 형형색색의 꽃다발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개중에는 편지 여럿과,
 
다른 친구들과 찍었던 려하의 사진도 보입니다.
 
...
 
열차는 천천히 선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고요한 열차 내부에 덜커덩 소리만이 공기 가득 메워질 뿐입니다.
 
노을이 진철이와 려하의 뺨을 적신 채 머물고 있습니다.
 
물건들이 주홍색으로 하나, 둘 덧칠해져갑니다.
 
그에따라 시간도 점차 흘러만 갑니다.
 
강진철:...하루가 끝나고 있어. 역에 도착하면 하늘이 새까매지겠지.
정말 안 내릴 거야? ...진짜로?
 
편려하:(음...)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강진철:난... 네가 원하는대로 한다면 상관없어. 조금 더 깊게 고민해봐도 되지 않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돌아가서 하고 싶은 거나... 그런 거 없어?
 
편려하:하고 싶은 거. 음... 세계여행?
근데 그런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닌가.
 
강진철:왜? 아까는 새로운 경험은 환영인 것처럼 말하더니.
 
편려하:새로운 경험이 닥쳐 오면 환영인 거고, 내가 굳이 나서서 하고 싶진 않고.
 
강진철:그런 마인드로 세계여행을 하려고 했단 말이야? 어이없다.
 
편려하:세계여행은 일단... 그래도 내가 가보지 못 한 곳에 나를 던져 놓는 거니까. 이런 마인드면 어떻고, 또 저런 마인드면 뭐 어때?
 
강진철: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네가 여행을 간다면 정말 아무 사전계획 없이 훌쩍 떠나버릴 것 같네... 미아가 되면 그것도 그거대로 재밌다고 팔랑팔랑 돌아다니겠지.
 
편려하:정말 재미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이곳저곳 구르다 보면 또 어떻게 살 길을 찾고... 뭐 그러겠지. 계획은 불확실한 사람이나 세우는 거야. 귀찮게 뭐하러 굳이 계획을 하지.
 
강진철:음... 그건 그래, 겁이 많은 녀석들이나 계획을 세우는 거지. 난 운과 감으로 길을 때려 맞출거다. (킥킥) 우리는 여행 같이 가면 지구 반바퀴는 돌아있을 것 같지 않냐? 꽤 재밌겠네.
 
편려하:(끄덕) 자신을 믿고 있다면 굳이 주변의 것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너도 네 운과 감을 꽤나 믿는 것 같고. (픽 웃고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걷다보면 정말 즐거울 것 같은데. 뭐에 억압받는 게 없잖아.
 
강진철:맞아, 맞아~ 외국에 나가면 걍 걷는 길 마다 새로운 것들 뿐인데. 겨우 길 잃는 게 즐거움을 꺼트릴 순 없을 거야! 너의 운 100, 나의 운 120, 도합 280의 운으로 아무나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명소도 발견해보고 말이야~
 
편려하:길을 잃어도 새로운 곳... 길을 잃지 않아도 새로운 곳. 그런 점에서 내가 경험해 보지 못 한 나라들은 정말 가보고 싶단 말이지. (끄덕끄덕) 음... 네 운이 더 높은 게 맞아? 오히려 이러면 역효과를 내던데. 도한 -20 되는 거 아니야?
 
강진철:뭣, 아니거든? 나 운 완전 좋거든? ...아, 아닌가 안 좋은가? (잠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망각한 건지 머리를 긁적...)
정말 가보고 싶어? ...그럼 벌써 죽는 건 손해 아니야?
 
편려하:죽은 뒤에는 더 자유롭게 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난 그 기로에서 도박 한 번 해보려는 거고.
 
강진철:난 내가 삶에 지치지만 않았다면... 내리겠다고 대답했을 텐데. 다시 생각해도 넌 정말 대단해~ 이승에 잃을 게 없는 것도 아닌데.
뭐, 마음을 굳힌 것 같으니까 그 도박 대박 터지길 내가 응원해 줄게.
 
편려하:이승에 잃을 거... 없지 않나? (곰곰...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 있나?) 그래 주면 고맙고. 너도 심심하지 않고 좋잖아?
 
강진철:으응...? 아니야, 그냥 대충 맥락상 한 말이라고 생각해. (눈을 슬쩍 피했다) 뭐, 나야 좋긴 하지만... 그래, 좋아. 알아서 해.
 
해가 기울어짐에 따라 그림자도 점점 기우뚱합니다.
 
려하가 살아왔던 삶은 어떤 삶이었나요?
 
행복했나요, 혹은 괴로웠나요.
 
하루가 다 가고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충분히 되었나요.
 
서녘빛에 눈을 찌푸리면 저 앞으로 터널이 보입니다.
 
열차는 천천히 터널 안으로 들어갑니다.
 
[민첩] 판정
 
편려하:
민첩
기준치: 80/40/16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훅!
 
려하는 갑자기 불어온 강하고 뜨거운 바람에 앉아 있지 못하고 밀려납니다.
 
하지만 다행히 날아오는 잔해들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부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에 밀려난 몸이 벽에 세게 부딪힙니다.
 
쿵!
 
그대로 정신을 잃습니다.
 
… …
 
려하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또다시 그 어두운 방 안 입니다.
 
필름은 천천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던 장면들은 드디어 마지막을 향해 갑니다.
 
거의 끝부분에 있는 필름의 장면이 확대됩니다.
 
그리고, 엄청난 불길이 당신 주변으로 솟아납니다.
 
타닥, 타닥 하고 불타는 소리와 함께,
 
코 안으로 매캐한 화염연기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시야에 쓰러져있는 려하가 잡힙니다.
 
미동도 없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기절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려하의 다리 부분에 불타고 있는 건물의 벽이 넘어져 있습니다.
 
웬만한 힘으로 끄집어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장면은 당신이 쓰러진 뒤쪽과,
 
사람들이 도망가는 앞쪽을 비춥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려하의 손을 잡아당겼을 것입니다.
 
'려하야!'
 
잡아당기고, 잡아당기고,
 
벽을 들어도 보고,
 
다시 잡아당기고,
 
소리도 쳐보고...
 
아,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
 
눈 앞이 먹먹히 흐려집니다.
 
몸에 힘이 없어집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
 
덜컹,
 
다시 정신이 돌아옵니다.
 
려하는 여전히 열차 안입니다.
 
바깥 풍경은 어느새 밤으로 변해 있습니다.
 
이곳에 있던 동안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요.
 
몇 분 있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하늘에는 별이 수두룩하고 달이 밝게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진철이는 이번엔 창 밖이 아니라 려하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 시선이 어찌나 진하고 뚜렷한지,
 
진철이의 눈동자에 스며있는 려하의 얼굴이 보일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진철이가 입을 엽니다.
 
강진철:우린 다신 만날 수 없겠지.
 
편려하:그러려나?
 
진철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여전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순간,
 
탁, 하고 열차의 불이 꺼집니다.
 
그리고,
 
려하의 머릿속에서 또다시 무언가가…
 
이제 이것도 지긋지긋하네요.
 
지루하다는 생각으로 정면을 바라보면...
 
이제까지와의 장면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건… 영상이네요.
 
필름이 아닙니다.
 
온전한 려하의 기억입니다.
 
스치면서 봐 왔던 바다색 머리 남자애와 처음으로 말을 틉니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재미있습니다.
 
함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땡땡이를 칩니다.
 
뽀뽀를 받은 그 애의 얼굴은 새빨갛습니다.
 
어린애 아니랄까봐. 조금 웃기네요.
 
눈치를 보며 힐끔거리는 꼴이 귀여웠다고 생각했던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길 가운데 쓰러진 려하를 무릎에 눕혀놓고,
 
얼굴을 쓰담아주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래도 난 이제 만족해.'
 
진철이입니다.
 
깨달았나요?
 
려하는 여지껏 필름으로 진철이의 주마등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열차의 불이 탁 켜집니다.
 
어지러운 정신을 가다듬으면 시야에 진철이가 잡힙니다.
 
열차가 점점 느려집니다.
 
강진철:곧 역에 설 거야.
 
얼마 후 덜컹거리던 열차가 멈춥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위치한 열차의 출구가 자동으로 열립니다.
 
바깥은 연기가 자욱합니다.
 
그걸보던 진철이는,
 
잠깐의 간극을 두고 입을 엽니다.
 
강진철:…너한테 거짓말했어.
넌 수학여행 날에 폭발 사고로 죽었어.
난 죽지는 않았는데...
그 사건 이후로 다리도 잃고… 몸 곳곳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죽을 때까지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낫겠다 생각했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삶을 살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냥 매일매일 살아 숨쉬는 게 고통스러웠어.
죽어버리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는 진철이의 눈은 젖어있습니다.
 
강진철:그런데... 말이 쉽지 죽는 걸 어떻게 하냐?
엄마가 한 눈 판 사이에 휠체어를 이끌고 바다로 갔었어.
모래밭을 기어서, 기어서... 조금만 더 기어가면 자유인데.
난… 그래, 겁이 많은 애새끼잖아.
누구처럼 공포를 모르고 바닷속에 몸을 던질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했을 텐데.
머뭇거리다가 결국 들켜서 혼났어.
... 어느 날은 네가 떠올랐어.
너였다면 나에게 어떻게 이야기 해 줄까?
내가 진지하게 죽고 싶다고 하면, 그래, 라고 대답해줄까?
너라면 왠지 그래줄 것 같았어. 너도 답답한 거 싫잖아.
너라면... 언제나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해 줄 거잖아...
그래서 난 네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웠어.
그렇게 계속 그리워하다 보니까,
꿈에선지 현실에서인지,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걔가 이야기하더라.
무슨 제안만 들어주면 자유를 주고...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그리고 나는... 너를 만나고 싶다고 했어.
편려하. 지옥 같은 삶을 내팽겨치고 내가 여기 온 건 잘 한 거지?
그렇지? 잘 했다고... 말해 줘.
 
편려하:... (솔직히...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냥 아까부터 너와 얘기하던 게 전부 터무니없다고 생각이 들어서일까, 현실감이 아직도 없어서일까....) (그러니 나는 네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그냥 고작 네가 원하던 말을, 늘 그렇듯 그런 표정으로 해줄 뿐이야.) 잘 했어.
 
강진철:응, 그렇게 말 해줘서 고마워.
 
열차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습니다.
 
려하는 이제… 어떻게 하나요?
 
결정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편려하:(안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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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하는 연기가 자욱한 출구 너머를 멀거니 응시합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허와 같은 기분이 듭니다.
 
열린 문은 얼른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려하는 이 곳으로 걸음을 내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진철이와 함께 죽음으로 가는 이 열차를 끝까지 타보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열차는 이내 출구의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열차 내부에는 고요가 찾아옵니다.
 
열차의 증기가 빠지는 소리가 이어 들려오고 출발하기 시작합니다.
 
진철이가 려하의 손을 잡아옵니다.
 
따스한 손입니다.
 
그 온도가 려하의 마음을 건드려옵니다.
 
이미 떠난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요.
 
그런 건 다 소용없습니다.
 
어디선가 잔잔한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자, 그럼 다시 열차의 좌석에 앉아볼까요.
 
우리는 결국 마지막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이어가봅시다.
 
그리고 같이 맞이하는 거예요.
 
둘이서.
 
[ END2 우리가 손을 맞잡았을 때 ]
 
 :강진철, 편려하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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